포르노가 촉발한 북극 소년의 방황
러시아 극동 지역의 한 마을, 시베리아 북극계 아시안 인종 중 하나인 추콧족(Chukotka)이 모여 사는 곳이다. 맑은 날엔 베링 해협 건너 알래스카가 시야에 들어올 정도로 미국을 가까이에 두고 있다. 거주 인구 5만 명에 불과한 추콧족의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 포르노 사이트 ‘웹캠 걸’의 등장은 일단 의외의 설정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문명의 영향을 적게 받고 있는 곳이지만 이들도 인터넷을 통하여 바깥세상을 ‘관찰’하고 있다. 저녁이 되면 남자들은 ‘커뮤니티 랩톱’ 하나를 두고 모여 앉아 유심히 들여다보는 것이 있다. 바다 건너 나라 미국의 여자들, 웹캠 앞에서 자신들의 나체를 보여주며 돈을 버는 웹캠 걸들이다. 사춘기의 15세 소년 레쉬카(블라디미르 오노코브)에게도 웹캠의 모델들이 주관심 대상이다.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그는 마을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렇듯 고래 사냥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레쉬카는 전기가 끊어지는 시간이면 동네 발전기를 끌어다가 랩톱을 켜고 웹캠 걸들과 만난다. 그 중 ‘HollySweet999’이라는 이름의 모델을 접하면서부터 레쉬카의 호기심은 환상과 현실의 경계선을 넘기 시작한다. 레쉬카의 마음속에 어느덧 그녀는 첫사랑의 여인으로 자리한다. 그녀와 대화하기 위해 영어를 배우고 목소리조차 들을 수 없지만 그녀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레쉬카의 마음은 설렌다. 어느 날 HollySweet999의 모습이 채팅방에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자 레쉬카는 불안에 잠긴다. 그는 친구 코리얀이 비용을 내야만 연결되는 독방에서 그녀를 독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분노와 질투로 괴로워하던 레쉬카는코리얀과 몸싸움을 벌이다 친구가 죽게 되는 일이 발생한다. 레쉬카는 미국으로 도망가기로 마음먹는다. 마을 사람들 몰래 배를 훔쳐 알래스카로 향한다. 미국에 도착하면 디트로이트로 달려가 ‘그녀’를 만날 작정으로. 세상과 단절되다시피 한 고립된 세계, 북극의 한 마을에서 일어나는 사춘기 소년의 성적 호기심과 엉뚱한 발상, 그리고 베링해협을 건너는 모험을 바라보며 우리는 오늘날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제공하는 허상이 한 개인의 삶에 끼칠 수 있는 영향과 아이러니를 경험하게 된다. ‘고래잡이 소년’은 러시아의 필립 유리예브 감독의 연출 데뷔 작품으로 지난해 베니스영화제에서 신예 감독에게 주어지는 감독상을, 베이징국제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연기 경험이 전혀 없으면서도 웹캠 걸에 집착하는 레쉬카 역을 매우 리얼하게 연기해낸 오노코브는 토론토영화제 최고의 서프라이즈였다. 김정 영화평론가고래잡이 영화 고래잡이 소년